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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대부>에 의의가 있다면 그건 할리우드가 탄생시킨 성공과 퇴락에 관한 가장 탄탄한 신화적 서사라는 점이다.<대부>와 <아메리칸 갱스터>가 배경으로 선택한 실존했던 사회의 의미란, 성공하고 퇴락하는 신화적 인물들을얻을 수 있는 영화적으로 중요한 기회의 텃밭이라는 점에 다름 아니다. 그런 점에서 <아메리칸 갱스터>는 차라리 먼길을 돌아 다시 <대부>와 같은 종류의 영화가 된다. 아니 같은 종류의 오해 안에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영화다.<대부>의 기나긴 존속의 힘이 그 자체의 신화적 자생력에 있는 것처럼, <아메리칸 갱스터>의 매력은 스스로발굴해낸 두 인물, 프랭크와 리치의 신화성에 대한 집착에 있다. 간단히 물어보면 될 것이다. 과연 프랭크의 인생 역정이 매혹적으로 비치지 않았다면 <아메리칸 갱스터>라는프로젝트의 시작은 가능했을 것인가. 실존인물 프랭크는 자신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 영화의 초안이 된 기사를 쓴 <뉴욕매거진> 기자에게 “이봐, 지금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내가 지금 여기 앉아서 당신에게 말하고 있다는 거야. 걸어다니며,말하고 있다는 거. 이미 수백 번은 죽었어야 하는데도 말이지. 왜 그런지 알아? 그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야”라고말했다는데(씨네21 633호-아메리칸 드림의 뒷골목을 겨누다), 그의 말이 맞다. <아메리칸 갱스터>의 핵심은 사회적비판이나 해석 혹은 비유가 아니라 이미 말한 대로 매혹에 있다. 그런데 그건 프랭크에 관한 매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리치라는인물에 대한 매혹으로도 번진다. 미국을 살아가는 두 사나이에 대한 철저한 신화적 매혹, 그것이 <아메리칸 갱스터>의방점이다. <아메리칸 갱스터>는 거짓의 시대를 살며, 그것보다 더 거짓 같은 자기의 신화를 이룩하거나 지켜나간 두이상적 개척주의자, 인민주의자의 미국적 신화를 그리는 영화다. 그러므로 프랭크와 리치가 마주 앉아 조용히 담판을 벌이는 마지막장면은 두 개의 신화가 만나는 제 삼의 신화의 장이다. 마주보고 앉은 두 개의 신화적 모델. 둘은 서로에게 훌륭한 파트너이며이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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